2014년 3월 21일 금요일

[이선재 선생님] 모든 선의가 선행을 낳지 않는다.



모든 선의가 선행을 낳지 않는다‘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신 이선재 선생님.
과연 모든 선의는 선행을 낳지 않는가라는 의문점과 함께 많은 질문들을 안고 이선재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자처음에 해외봉사활동을 결심하신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이선재 선생님결심한적 없습니다그냥 가면 되지 결심해야 되나요?
학생들을 많이 만나면 그런 질문을 많이 들어요하지만 세상은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아요하다보면 내가 그 자리에 있고관심을 갖는 거지, “그래 결심했어?“ 이런 계기가 꼭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살다보니 내가 그곳에 있더군요. (웃음)

기자라오스르완다 등 세계 여러 국가들을 다니셨는데정확히 얼마나 많은 국가를 다니셨나요?
이선재 선생님그런 것들을 굳이 세 본적 없어요내가 그런데 관심이 없어요.

기자그런 수치에 연연하지 않는 건가요?
이선재 선생님연연하기다보다 나는 몇 개 국가를 다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차라리 몇 사람을 만났느냐를 물어본다면 따져보겠지만 정확히 세 본적은 없어요내가 아시아를 좋아해서 아시아 국가는 거의 다 가봤어요.

기자오래있었던 아시아 국가는 어딘가요?
이선재 선생님일본에 오래 있었습니다지금 라오스에 오래 머물고 있구요.

기자: ‘모든 선의가 선행을 낳지 않는다‘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주셨는데 그럼 선의가 때론 불행을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 하시나요?
이선재 선생님물론 있죠예를 들어 우리가 안 쓰는 옷들을 모아서 아프리카에 보내지만정작 그 나라의 의류산업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많은 옷들이 운송되는데 쓰이는 배송비그리고 모든 사람이 옷을 받을 수 없겠죠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불행을 낳게 될 수도 있죠.

기자하지만 선의의 목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이선재 선생님모든 일은 선의로 시작하죠요즘 후배들과 책을 쓰고 있는데논의를 하다가 좋은걸 찾아냈습니다당신의 선의를 보호하라여기서 선의가 중요해요선의가 선의로 남으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 됩니다이게 진짜 선행으로 남는 건지아니면 선행이 왜곡되거나 문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단순히 선의만 갖고 있다고 끝이 아니라는 거에요.

기자자원 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새로운 시각의 자원 활동 ,자원봉사를 주장한다고 하셨는데그렇다면 국제 자원 활동의 올바른 정체성은 어떤 것 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선재 선생님내가 수직을 수평으로‘ 이란 말을 주장합니다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사이도 수직 관계잖아요우리가 자원 활동을 가는 나라가 우리들의 꿈을 쫓아오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됩니다수직을 수평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은 수직을 수평으로 만드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제가 술을 좋아해서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실천 중에 있죠. (웃음)

기자자원 활동 가셔서는 현지인과도 술을 드시나요?
이선재 선생님물론이죠그럼 누구와 마시나요, (웃음)
기자거기서 소주도 마시나요?
이선재 선생님소주는 없죠그곳에서 마시는 술들은 현지 술이에요소주는 비싸서 못 먹어요.

기자각국의 술들을 많이 드셔 보셨을 텐데 얘기 좀 해 주세요
이선재 선생님그건 제관심사에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 동네엔 어떤 술이 있는지부터 찾아요그 지역의 로컬 술부터 시작해서 마시기 시작해요그렇게 술을 마시다보면 많이 친해질 수 있어요그런데 보통 현지인들은 자신의 마을의 술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좋아하죠.
동네 술들은 보통 독해요증류수라서근데 그때 잘해야 돼요그걸 마시고 죽는 시늉을 해야 돼요그래야지 내가 그 사람들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에요그 다음부터는 쉬워요가장 좋은 방법이죠그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냐없냐는 그 순간 결정 되는 거죠.
기자그럼 술로 그 사람들과의 수평의 관계를 맞추시는 거네요.
이선재 선생님그렇죠.


이선재 선생님나도 뭐 싫어하는 술 있습니다어떤 술은 시고 어떤 술은 독하고 그걸 얘기 할 수 있지만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에요내가 그런 것을 잘해서 여기까지 살아남은 것 같아요. (웃음)
기자음주 하나에도 철학이 담겨 있는 것 같네요.
이선재 선생님철학까지는 아니에요단지 술 하나로 그 사람들과의 관계는 다 끝낼 수 있어요.
기자정말 좋은 점 배운 것 같습니다.
이선재 선생님좋은 점이 아니라 핵심이에요이 내용은 책에도 없어요. (웃음)

기자라오스는 7월에 돌아가신다고 하셨는데 언제 오시나요?
이선재선생님돈이 떨어지면 오겠죠?

기자자원 활동은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이선재 선생님영원히 하지는 않겠죠저도 돈이 필요해지면 언젠가는 직업을 구하겠죠지금은 직업 없이 자원 활동을 전업 비슷하게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무슨 직업이 생겨도 자원 활동은 하겠죠오랫동안 해왔으니까언제까지 기약은 없어요사회적으로 변화를 만드는데 참여하는 운동이니 죽어라 하겠죠하지만 제가 직업이 생기면 그 방식이 바뀔 수는 있겠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어요.


기자마지막으로 이선재 선생님에게 자원 활동이란?
이선재 선생님자발적으로 수직을 수평으로 만드는 것.
자원 활동 이란 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세상을 변화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수직을 수평을 바꾸는데 있어서 자원 활동만 해서는 안 되지만 자원 활동이 그런 것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는 있어요.

자원봉사가 아닌 자원 활동 이라고 부르시는 이선재 선생님.
봉사라는 프레임 속에는 나는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주기만 하는 것은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봉사’ 활동의 최악은 도덕적 우월감이나 자기만족을 얻는 정도라고 하셨다.
혹은 이력서에 한줄졸업을 위해흔히 말하는 스펙을 위해.

한 사람이 자신의 문제에만 신경 쓰다가 처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려고 시도할 때.
그리고 시도가 이어져서 주변 세계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고 하는 것.
그런 것이 진정한 자원 활동 이라고 말씀 하셨다.
자원 활동은 단순히 남을 돕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개입하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다따라서 자원 활동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스스로의 삶에 대해 더 성찰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터프하고 유쾌했던 이선재 선생님의 인터뷰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나비기자단 1기 김찬용 eunsappodae@naver.com
출처: http://www.inavi.org/file/story_navi.php?ptype=view&code=story_navi&idx=6042

2014년 3월 7일 금요일

2014년 2월 마지막날, 사랑이 자연출산기

예정일: 3월 4일
출산일: 2월 28일 (39주 4일차)
태 명: 사랑이
태어난 곳: 마마스조산원
담당조산사: 방우리 조산사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는 '자연출산'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와 아기가 주체가 되는 출산. 
회음부절개, 무통주사 및 촉진제 등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병원분만 이전에 가정에서 자연스레 아기를 맞이했듯 그렇게, 특별하지도 시끄럽지도 않게, 평화롭게 사랑이의 세상맞이를 해 주고 싶었다. 

신랑과 나는 이견없이 그냥 자연스레 동의했고, 여러 강의도 듣고 책도 보며 함께 차근차근 사랑이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나름 공부를 많이 한 걸까? 하도 들여다봐서 면역이 된 걸까, 출산일이 가까워 올수록 불안감보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형광등이 떨어져야 아기가 나온다, 온 몸의 뼈가 부스러지는 느낌이다 등등 출산의 고통에 대해 어른들이 말씀하기도 했지만, 막상 겪고 나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엄청 아프긴 하지만 ㅜㅜ)
오히려 출산보다는 그 후의 모유수유 등등 육아에 대한 걱정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그 걱정은 역시나 현실화 되었다^^;

임신 5개월에 직장을 그만 둔 나는 출산 직전까지 일주일 내내 요가, 수영을 번갈아가며 했고 주말마다 신랑이랑 많이 걸어다녔다. 태어나서 이렇게 운동을 많이 해 본적은 없었지 싶다.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고 나면 상쾌한 것이 '아, 사람들이 이 맛에 운동하나보다' 싶기도 했다. 
꼭 태교를 위한 건 아니었지만 미뤄왔던 수채화도 시작하고, 듣고싶었던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도서관도 다니며 스트레스 없는 행복한 임신기간을 보냈다.  '사랑아, 엄마에게 이런 자유시간을 줘서 고마워.' 라고 말하면서^^

임신기간 내 이런 생각과 생활들이 순산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론은 이제 거두절미하고,
본격적으로 2월 28일 아침.

37주 막달검사를 할 때 2.7 kg라고 했다. 너무 크면 안되는데, 생각을 하며 40주가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8주부터는 신랑도 불안한지 출근해서도 배가 아프진 않은지 계속 연락을 했다. 그런데 39주가 되도록 이슬도 없고, 가진통도 없고, 느낌도 없고, 출산의 기미는 없었다.

아침 7시. 

출근하는 신랑 아침 챙겨주는데 배가 살살 아파왔다. 혹시 가진통일까? 생각이 스쳤지만 그보다 '어제 오븐에 구은 치킨이 덜 익었었나, 배탈이 났나, 응아를 눠야되나' 했다. 신랑도 차마 이것이 가진통이라고는 생각 안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하셨다.

다시 잘까.. 하다가 거실에 나와 빌려온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근데 뭔가 배가 아팠다 안아팠다 주기적으로 반복되기에.. 진통이라는 느낌이 왔다! 응아배랑 헷갈리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가진통인것 같다고 방우리 조산사님께 9시쯤 연락을 했다. .. 카톡을 보내고 나서도 아니면 어떡하지, 생각이 들었다. 조산사님이 몇분간격인지 물어보셔서 진통어플을 켜고 주기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혹시 가진통이면 집안을 정리해야 하기에^^;; 진통이 없을 때는 설거지를 하다 배가 아프면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거실에서 엎드려서 진통을 느꼈다. 아, 진통이 맞나보다. 하면서.

진통간격이 너무 짧은 것 같아서 이게 제대로 돌아가는건지 아닌지 긴가민가해하며 조산사님께 캡쳐해서 보냈는데, 지금 조산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올레~ 그때가 오전 10시였다.

신랑한테 조산원에 지금 갈거라고 카톡을 하고 택시를 불렀다. '이 정도로 아파서 애가 나오겠어?' 라며 진진통이 시작되었다고도 생각 안했고, 조산원에 가서도 진행이 늦어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단 오라시니 체크는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오전 11시.

가정출산을 하다 급히 오신 방우리 조산사님이 내진을 해 보시더니, 2~3 cm 가 열렸다고 하시며, 빠르면 오늘 오후, 늦어도 저녁에는 나올 것 같다고 하셨다. 헐! 벌써?

친정엄마와 신랑에게 연락을 하고, 본격적으로 마음가짐을 달리하고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정신이 있었다. 혹시 너무 빨라 신랑 오기전에 너무 많이 진행될까 싶어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오후 1시.

신랑이 왔다!!
크리스마스 때 신랑이 사온 어니스크 티라미슈 케이크에 맛에 반해.. 진통할 때 이것을 꼭 먹겠노라 노래를 불렀었는데 막상 신랑이 먹겠냐고 물어보는데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이때부터는 생각이 잘 안난다.
눈은 계속 감고 있었고 가끔 뜨고 신랑을 봤다.
신랑이 사전교육 때 받은 허리마사지를 해주는데 왠지 부위를 정확히 누르지 않는 느낌.. -_-;ㅋ 어떨 땐 신랑의 손길이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땐 몸에 뭔가 닿는 것 조차 싫어서 손길을 내치기도 했다;
신랑은 내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며 꿋꿋이 곁을 지켜주었다.



오후 4시.

진통이 분명 점점 세지고 있었다.
욕조에 들어가서 진통을 하다 나오기도 했다. 물에 몸을 맡기고 흔드니 조금 경감되는 것 같기도 했다. 작은 핏덩이같은 것이 물에 조금씩 보였는데 물어보니 이슬이라 하였다.

진통이 가셨을 때는 공부한대로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이완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진통이 오면 복식호흡인지 심호흡인지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숫자를 세며 진통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숫자가 12~15쯤 되면 사그라지는 느낌이었다. 숫자를 세니 정신이 분산되어 견디기가 한결 수월한 것 같았다. 신랑도 호흡 잘 하고 있다고 계속 격려해줬다.

아플때마다 숫자를 세며 생각했다. 사랑이도 힘을 내서 내려오고 있구나. 아픈만큼 더 많이 내려오고 있겠지? 힘내자. 지나갈거야.
가끔 눈을 뜨면 곁에 있는 신랑이 든든하고 고마웠다. 같이하고 있는 느낌이 좋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충분히 아팠다고 생각했는데 조산사님이 내진을 하시더니 6~8 cm 진행되었다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요 ㅜㅜ' 라고 했던 것 같다. 눈을 감고 있어서 그런가 정신이 거의 나갔던 것 같다.

조산사님이 밑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자연스레 힘을 주라고 하셨다. 누워서 힘을 주다가, 변기에 앉아서도 힘을 주었다.


오후 6시.

시간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이쯤 되지 않았을까?
양수에 있던 사랑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놀라지 않기를 바랬던 나는 물속에서 출산하고 싶었고, 본격적으로 힘주기 시작했을 때 욕조에 들어갔다.
신랑이 뒤에서 안아주는 출산을 생각했었는데, 막상 주문할 정신도 없었고, 신랑은 조산사님과 같이 내 다리를 잡았다. -_-; (후담으로 전해듣길,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았단다 -_-;)

그리고 그렇게 출산을 준비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복병이 있었다.
말하기도 부끄러우나, 둘째때는 꼭 조치를 취해야 할 그 이름도 고통스러운 치..X.
(신랑과 조산사님이 다 봤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 부끄럽다 ㅜㅜ 그래도 어째 ㅜㅜ 이미 지나갔다... 신랑이 나중에 말하길, 아기도 아기인데 그 순간 나의 똥X가 더 염려스러웠다는; 흑... 이렇게 부부가 되나요.....)

어쨌든 회음부와 똥X의 고통을 동시에 느끼며 힘을 주기 시작했는데, 진통이 강하게 왔을 때 힘을 길고 강하게 주라고 하셨다. 근데 그게 정말 힘들었다. 아파 죽겠는데 힘까지 줘야되니 ㅜㅜ 그냥 자연스레 여기서부터는 힘 안줘도 나오는거 아닌가 ㅜㅜ 모르겠다. 시키는대로 해야지 ㅜㅜ
나는 힘을 줬다가 힘을 빼면 다시 아기가 들어가는 건 줄 알고 좌절했는데 조산사님과 신랑 왈, 아니라고, 다시 안들어간다고, 힘 열심히 주라고 격려했다.
'아, 정말 못하겠어요'
'아니에요. 잘 하고 있어요.'
'집중해서 한번만 힘 더줘요.'
'오, 이번에 힘 정말 잘 줬어. 많이 나왔어. 이렇게 한번만 더 줘요.'
집중.. 집중... 회음부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 왔지만.. 계속 힘을 줬다.

드디어.. 사랑이 머리가 나왔다고 만져보라고 했다! 그 느낌을 평생 잊을 수 없다던데! 만져보니 둥그렇지 않고 뾰족했다 -_-; 사랑이도 힘들게 나오고 있구나 ㅜㅜ
신랑 왈, 머리가 나오면서 양막이 터졌다고 했다.

오후 7시 6분.
2.8 kg로 사랑이가 세상에 나왔다.

어깨가 나올때도 아팠나? ㅜㅜ 생각이 잘 안난다. 마지막에 조산사님이 아기를 훽 돌리면서 꺼냈셨다. 그리고 사랑이가 첫 울음을 터뜨리고 품에 안겼다. 그 땐 너무 아프고 정신도 없어서 감동을 느낄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어안이 벙벙했다고 해야하나.
오히려 지금 그 매끄러운 촉감, 따뜻한 느낌, 생각하니 울컥한다. 내 아기. 힘들었지ㅜㅜ 그래도 우리 잘 했어, 사랑아. 고생했어..


회음부는 좀 군데군데 찢어졌지만 심하지는 않다고 하셨다.
회음부 꼬맬 때, 태반 뺄 때 더 아팠다ㅜㅜ 아기가 나왔다고 끝난게 끝난게 아니구나...ㅜㅜ

후처치가 끝나고, 사랑이는 바로 젖을 물었다. 어떻게 요 조그만 것이 빠는 것을 알까. 신기했다.

아기를 낳은 첫 날에도 푹 자지는 못하고 중간중간에 깨며 젖을 물렸다. 잠결에 '아, 이래서 산모 푹 쉬라고 일반병원에서는 신생아실로 데려가는 구만' 하고 순간 생각했지만^^;;
신랑이 사랑이 다독이고 돌보는 소리를 들으며 참 든든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리고 밤낮없이 사랑이가 삑 하고 울면 달려와주시는 배테랑 간호사분들.. 정말 든든하고 감사했다.


첫 아기인 만큼 병원분만의 경험도 없을 뿐더러  병원에서 분만했다고 다 트라우마가 있거나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연출산, 조산원에서의 출산은 엄청 특별하거나 유별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그냥 '자연스러운' 거였다. 출산을 경험하고 나서, 충분히 만족스러웠고 행복했기에 둘째나 셋째를 낳는다면 어김없이 조산원에 갈 것 같다. (용기를 좀 더 낸다면 집에서..?! 그러나 우리집엔 욕조가 없다 ㅜㅜ)

자연출산을 준비하면서, 비용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일반 산부인과에서는 모든 검사포함 50만원 안쪽으로 가능한데 많게 5~6배까지 지불해야 된다는 게 부담스럽고 조금은 부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친구부부가 출산한 경험이 있는 마마스조산원은 그보다는 비용적인 부담은 덜 했지만, 여전히 일반 병원에서의 출산보다는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출산을 하고 나니 전혀 그 돈이 아깝지 않았고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복병 똥X.... 앓은 경험이 있긴 했지만 출산 때 문제가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다. 회음부 열상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는데 정말 일주일 내내 제대로 앉지도 못할 정도로 고생했다. 병원까지 갔었는데, 모유수유 포기하라는 식으로 얘기해서 수술은 안했지만... 둘째를 낳게 된다면 정말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후에 찾아보니 치X로 고생하신 분들이 꽤 있는것 같았고, 어떤 분들은 수술도 하고 모유수유도 병행하셨단다. 어쨌든 이건 정말.. 생각지 못했던 복병이었다.

20일째.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치X로 한 일주일 고생하고, 젖몸살에 유선염으로 울고불고하다, 젖량이 줄어든 좌절감에 또 울고.. 눈물 많았던 2주가 지나고 이제 웃기도 하고, 미뤄왔던 출산후기까지 쓸 여유도 생겼다.

완모 고집보다 아기가 배고파하지 않게 하는게 우선이라는 친정엄마 말씀에 따라 하루에 30~40 ml 정도씩 혼합수유도 하고 있지만, 밤낮으로 열심히 젖 물려서 분유 떼고 돌까지 꼭 완모하고 싶다 ㅜㅜ 

2주간 나도 힘들고 이런 나를 보는 엄마도 힘들어하셔서.. 조리원에 갔으면 유선염까지는 안왔을까? 친정엄마랑 분유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모유로만 계속 먹였을까? 이런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밤낮으로 계속 아기랑 붙어있을 수 있고, 엄마밥 먹고, 무엇보다 "짜랑이~ 짜랑이~ 할모니가 짜랑이 보고싶어쪄요" 하면서 무한 행복해하시는 엄마 보니까 좋다.^^;  

조산원에서 일주일 후에 회음부 아문 정도 보고 실밥 뽑으러 산부인과 가라고 하셔서 갔는데.. 의사 왈, '너무 여러군데 꼬매놔서 빼면 아프실거에요. 녹는 실이니 그냥 두세요. 요도로 안찢어져서 다행이네요.' -_- 흠... 친절한 설명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실밥은 그냥 두었다;

기저귀 젖거나 배고플 때만 삑~ 울고 안아주면 바로 그치는 우리 순딩이 사랑이. 
지금처럼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다오~! 엄마가 많이많이 사랑해^^

그리고 마마스조산원 방우리조산사님 비롯한 간호사분들, 정말 감사드려요.  후회없는 선택이었고, 정말 만족스러운 출산이었어요. 행복했어요~

마지막으로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하나되어 함께해주는 우리 신랑! 사랑이로 하여금 당신과 더 끈끈한 가족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행복하고 감사해.


출산 전에 자연출산을 알게되어 정말 감사하고,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탄생의 시간을 그리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었던 것에 또 한번 감사하다.
자연출산의 가치를 지지하고, 함께하고, 퍼뜨려주시는 분들께도 감사하다.

자~ 육아도 퐈이팅하러! 고고!


진통하느라 용쓰고 있는 나

 에헤헤~ 사랑이 몸무게 재다

 첫 모유수유의 감동

결국 먹지못한 티라미슈 케이크.. ㅜㅜ 
(모유수유할 때도 밀가루는 안좋나보다. 간호사분들이 말리셔서 출산후에도 먹지못함 ㅜ) 

좋다^^


붓기 조금 빠진 우리 이쁜 사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