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7일 일요일

[에듀머니칼럼] 고액연봉보다 중요한 건 생애소득

연봉 2500만원 이상, 대기업, 정규직, 화이트칼라.

올 해 초 현대경제 연구원에서 대학생 5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생들이 원하는 일자리 스펙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대학생 중 75.6%는 청년 실업의 이유로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대학생들이 원하는 일자리 스펙과 비교해보면 마음에 드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대기업 일자리가 없어서이다.

문제는 대기업을 원하는 것이 대기업 일자리가 전체의 10%정도 밖에 안 된다는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부동산 가격, 사교육비, 노후자금 등을 생각하면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자체가 고비용구조이다보니 직업을 선택할 때도 소득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게 되고 결론은 연봉 높은 대기업이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만약 열심히 스펙을 쌓아서 대기업 취업에 성공을 한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취업만 생각하기에도 정신 없겠지만 인생의 목표가 취업은 아니었을테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평균 수명 100 시대에는 취업 이후에도 70년이란 시간이 남아있다.

취업을 하면 28살, 3~4년 돈 모아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32살이다. 대기업이라면 45~50세 사이에 회사를 나오게 된다. 즉 자녀가 대학도 가기 전, 중고등학생일 때 다시 한 번 실업자 신세가 되어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 인생의 절반이 더 남아있다.

그 때 자신의 재무상태가 어떨 것인지 생각해보자. 대기업에 간다면 초봉은 3000만원에서 4000만원 사이일테고 퇴직할 때쯤엔 7~8000만원 정도 될 것이다(계산의 편의를 위해 물가나 임금수준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직장생활하는 기간 동안 연봉을 평균 5000만원으로 잡는다면 20년동안 벌 수 있는 돈은 대략 10억. 그런데 20년동안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살 수 없다. 아무리 절약한다하더라도 절반은 쓰게 될 것이다. 그나마 남은 5억 중에 일부는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재테크에 성공해서 큰 돈을 벌게 될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퇴직하고도 남은 삶은 50년 이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기은퇴 후 일 안 하고 놀면서 사는 것을 꿈꾸지만 조금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 생각은 금새 바뀌게 된다. 여행 실컷 다니면서 돈 펑펑 쓰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50년 동안의 여행은 너무 길다. 여행다니고 골프치러다니는 것도 어쩌다 한 번 해야 재밌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날은 집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약수터 다녀오고, 내려와서 아침 먹고, 아침드라마보고 방청소하고, 그러면 점심시간이다. 다시 밥 먹고 졸리면 한숨자고, 일어나서 외출을 한다. 저녁은 지인들과 술 한잔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드라마를 본다. 그리고 졸리면 잔다. 이 생활을 50년 동안 해야 된다. 이런 삶을 원하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은퇴전 직장생활 20년동안도 정말 자신이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원치 않은 일을 하면서 그저 먹고만 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밥벌이에 급급해서 이렇게 살다보니 자연스레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늘 하위권을 맴돈다. 괴롭게 출근을 하면서 주말만 기다리니 행복할 수가 없다.

단순히 돈 많이 버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쌓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당장의 연봉 높은 직장을 들어가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생애소득을 높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즉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공무원처럼 직업의 안정성이 높아서 정년이 보장되는 일을 찾으란 말이 아니다. 100세 시대에는 60세 퇴직을 하더라도 40년이 남는다. 60세 이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어떤 직장에 들어갈까’의 수준에서 고민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소유욕과 존재욕이 동시에 존재한다.

진정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소유욕이 아닌 존재욕을 추구해야 한다. 스웨덴 교과서에는 존재욕을 희생하여 소유욕을 채우려한다면 병든 사회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유욕을 채우고자 허겁지겁 살아가고 있다. 소유욕이라는 것은 끝이 없어서 이것만 쥐면 행복할 것 같지만 늘 행복은 '조금 더'를 이야기하며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살면서 행복하지 않지만 왜 그런지 이유도 찾지 못 한다. 소유욕만 충족하려 하고 존재욕을 충족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스펙을 쌓기 위한 노력 대신에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도서관이나 학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욕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존재욕이 충족되는 일은 오래해도 지겹지 않다. 오히려 오래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고 즐기게 된다. 자연스레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회사에서의 이직 걱정이나 정년의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밖에 없다. 오래 일하기 때문에 당장의 연봉이 낮더라도 생애소득이 높기 때문에 경제적인 삶 자체도 훨씬 풍요롭게 된다.

이런 일은 가치를 중심에 놓고 고민해야 답이 나온다. 단순히 돈만 버는 일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그래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해나가느냐가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 요즘은 사회적기업도 많이 생겨났고, 일반 기업들 역시 사회공헌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기업은 주주에게 이득을 돌리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큰소리쳤던 GE의 전 회장 잭 웰치도 “주주가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며 자기주장을 뒤집었다. 기업도 가치가 중심에 있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만큼 세상이 바뀌고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소득이 낮은 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지만 88만원이면 어떤가? 많이 벌어야 된다고 강요하는 사회의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 하는 것이 문제다. 지금 당장은 88만원이라도 괜찮다. 가족부양의 의무에서 자유로운 사회초년생 시절이야말로 소득과 관계 없이 자신의 좋아하고 가치 있는 일을 찾을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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