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합니다. ‘나는 불행해지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없지요. 나도 행복하고 나를 만나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복해야 합니다. 자신이 행복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습니다. 항상 곁에 두고픈, 함께이고픈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배려의 심리>에서는 말합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자아가 확립된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을 만나야 자신을 성숙시키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요.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도, 나를 되돌아볼 기회를 주지 않고 미성숙한 상태로 남게 만드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도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말과 함께요.
매사에 초조해하거나,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거나, 마음의 갈등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사귀느냐’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의 주위에도 그 사람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줄만한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만 불행한 사람 스스로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1~2쪽)
책에선 말합니다. 누구와 어떻게 사귀느냐에 따라 나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있다고요. 배려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배려의 심리>라고 제목을 지었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일부러 아부를 하거나 가식적인 배려가 아닌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인품으로 참 배려를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향기에 취하곤 합니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지기도 하고요. ‘배려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이란 그걸 말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다면 좌절은 성장의 계기가 된다.(105쪽)
자아가 확립된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현실에 처하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주변 탓을 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도 안정감을 줍니다. 더군다나 이런 사람들 중 탐험가 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자신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정서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맞섬으로써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린 대체로 나를 추켜 세워주는 사람에게 약합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위선적인 상냥함에는 어떤 목적이 있다는 것이죠. 또한 이렇게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가짜를 만나면 나의 유치함과 불안감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남을 비난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이유는 단 한 가지, 자신을 향상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245쪽)
불행한 사람들은 대체로 불행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험담할 때 함께 험담해주는 사람을 친한 사람이라고 선택하는 경우처럼 말이죠. 되돌아보면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나도, 같이 험담을 하는 그 사람도 문제를 부딪치고 해결하기 보다는 안이한 상태로 유지하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추켜 세워주고, 같이 험담하는 사람하고 있으면 편한 걸까요? 그건 불행한 사람과 사귀고 있으면 자기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에게 경멸과 무시를 당하고 이용당해도 남 탓이라고 변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행한 것이 나만은 아니라는 위로를 받을 수도 있죠. 그래서 불행한 사람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상처 입힙니다. 그러면서 열등감과 불안감이 더욱 심해집니다. 이런 심리 상태가 심하면 심해질수록 타인의 대수롭지 않은 말 한 마디에 큰 상처를 입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남이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열등감과 불안감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죠.
만일 NO라고 해서 깨지는 인간관계라면 차라리 깨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억압하고 공포심을 갖게 하는 그런 인간관계에 어째서 그토록 매달리는가. 불행해지기 위해서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271쪽)
출처: http://api.v.daum.net/static/recombox1.swf?nid=14253405&m=1
댓글 없음:
댓글 쓰기